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카이치 사나에 (문단 편집) == 생애 및 정치 활동 == 1961년 3월 7일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서 태어나 나라현립 우네비 고등학교를 거쳐 [[고베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마쓰시타 정경숙을 5기로 수료하였다. 정경숙 동기로 [[이토 다쓰야]]가 있다.[* 이토와 똑같이 40회 총선으로 중의원에 입문했는데 이때의 나이도 32세로 같다.] 이후 미 연방하원의원 팻 슈뢰더(Pat Schroeder) 사무실에서 근무하다 1989년 귀국한다. 이후 일본경제단기대학 강사나 간사이하이비전컨소시엄 회장, 아침 정보프로그램 메인캐스터 등 지역에서 활동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지도에 힘을 입고서 1992년 제16대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나라현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당시 다카이치는 2위로 낙선했고, 1위와의 득표율 격차가 10% 정도였다.(나라현 선거구는 인구가 적어서 1명만 선출한다.) 참고로, 이때 당선된 핫토리 미츠오는 검사 출신 변호사로 아버지의 지반을 이은 전형적인 세습 정치인이었고, 나라현에서는 터줏대감 급의 인물이었으나, 정작 참의원에서는 이렇다할 활약도 없었고, 참의원 본회의, 참의원 상임위원회에 자주 결석을 해서 지역 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결국, 2004년 제20대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일본 1998년)|민주당]] 신인 후보에게 일격을 당해서 낙선, 재선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했다.] 1993년 제40대 [[중의원 총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나라현 전현구에서 32세의 젊은 나이로 첫 당선되었다. 이후 41대 총선부터의 소선거구제 개편 이후 [[나라현 제1구]]에서 중의원 의원을 3번 역임 후 2003년 낙선했으나[* 당시 당선자는 민주당의 [[마부치 스미오]].] 2005년 선거에서부터는 [[나라현 제2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복귀에 성공, 현재는 8선 의원이다. [[아베 신조]]의 측근 중 한 명으로,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거쳐 2014년 총무대신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2016년 8월부터 2017년 8월까지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을 지냈다. 총무대신 시절에 언론 장악을 시도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방송국이 정치적으로 공평하지 못한 내용을 반복해 방송하면 전파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 한마디로 전파 정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여 크게 논란이 되었다. 미 국무부 인권 보고서에 발표 되기도 하였다. [[https://www.nikkei.com/article/DGXLASGM04H0Q_U7A300C1NNE000/|#]] 아베 총리는 방송장악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을 산 다카이치 총무대신의 발언을 "법령에 관해 종래의 일반론을 대답했다"며 옹호했다. 2019년 9월 11일 다시 총무대신에 임명되었다. 이후 [[다케다 료타]]가 그 뒤를 이었다. 2021년 3월 11일 [[주간문춘]]에 의해 사와다 준 [[NTT]] 사장으로부터 두 차례 접대를 받았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사와다 씨와 두 차례 식사를 한 것은 사실지만, 접대를 받은 건 아니라며 주만문춘에 서면으로 "회식을 수반한 의견 교환은 행정의 공정성에 의심을 갖게 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전체 각자 부담 또는 전액 자사 부담을 철저히 했다"면서 보충 설명과 함께 NTT에서 두 차례 접대에 각각 1만 엔을 지불한 영수증 사본 2통을 보냈다.[[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311500119&wlog_tag3=daum|서울신문]][[https://bunshun.jp/articles/-/43953?page=2|주간문춘]]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할 의사를 피력했다. 9월 시점에선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지원 의사를 밝힌 상태다.[[https://www3.nhk.or.jp/news/html/20210810/k10013192151000.html|#]] 한국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에는 주일미군에 대하여 "한국과 미국의 지위 협정에서는 '살인 · 강간 · 납치 등 12개 중대 범죄만'은' 기소 '후' 용의자의 신병을 한국에 인도하는 것으로 되어있다"며 독일보다 한국의 사례를 먼저 들었고, [[유해 사이트]] 제도를 일본에 도입하려고 법안까지 졸속으로 통과시켜 비판을 받았다. 2021년에는 국기 훼손에 대하여 한국도 처벌하는데 일본은 왜 처벌하지 않냐며 법안 필요성을 강조했다.[* [[https://web.archive.org/web/20130622030424/https://www.sanae.gr.jp/column_details35.html|미군 불상사와 일미 지위 협정 재평가론(2008)]], [[https://diamond.jp/articles/-/3058|인터넷 규제에 맥진 자민당 '유해 정보'를 흘리면 징역형도(2008)]], [[https://www.sanae.gr.jp/column_detail1293.html|일본 국기 손괴 등의 죄를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의 재제출을 향해(2021)]]]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차기 당 총재 불출마 선언으로 인한 공백 상황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다카이치 사나에를 [[2021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차기 자민당 총재로 지지한다고 발언, 일본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 인물이다. 자민당 내의 [[아베 신조]] 등 여러 원로 중진 정치인들을 높이 떠받드는 태도를 보이면서 정치 원로들의 호감을 사고 있고 외교나 경제 정책 등도 아베 신조의 정책을 이을 것을 밝혀 아베 신조도 다카이치 사나에 지지를 선언했다. 아베와 아소 입장에서는 다카이치를 총리로 옹립해 [[아마리 아키라]][* 다만 이번에 아마리 의원은 [[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대신을 지지한다.] 의원을 내각 부총리 내지 자민당 간사장으로 등극시키고, 벚꽃 스캔들 재수사 때문에 당분간 정치 1선 복귀가 어려운 아베가 당내 정치적 영향력을 지속시키려는 의도를 보인다고 해석할 수 있다. 9월 9일 기준, 235,005명의 표본으로 집계된 [[야후재팬]]의 온라인 차기 자민당 총재 여론조사 결과, '''49.1%'''라는 과반에 육박하는 수치를 기록하며 출마 기자회견의 컨벤션 효과가 보수층에서 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추후 신문사 의뢰의 당 총재 여론조사에서 과연 [[기시다 후미오]] 후보의 지지율을 넘는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경선 초반인 9월 둘째 주 기준으로 일본 온라인 커뮤니티 및 인터넷 매체에서의 호응도[* 주로 [[우익]]]와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고 있다. 실제 [[넷 우익]]의 활동량이 많은 온라인에서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향후 당 총재 여론조사에서 이같은 흐름을 반영시켜 지지세를 높이는 것이 다카이치 후보의 과제일 것이다. 2021년 9월 19일에 시행된 마이니치 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총리 후보 1위는 여전히 고노 다로이긴 하지만, 다카이치가 기시다를 앞질러서 2위에 올랐다. 이는 자위대 강화, 헌법 개정, 적기지 공격 능력 등 일본의 국방력 강화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어 일본 국민들의 지지도가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기 총리로 선임시 [[우노 소스케]] 총리 이후 '''33년만에''' 처음으로 [[간사이]] 출신 총리가 배출되게 된다. 이 때문에 [[49회 중원선]]에서도 간사이 지방의 보수표를 규합하는데 유리할 수 있다. 1차 선거에서 [[기시다 후미오]], [[고노 다로]]의 뒤를 이어 3위에 그치며 결선 투표에 오르진 못했으나, 선거 이후 신임 기시다 총재[* 아베 전 총리는 다카이치 사나에가 당선되지 못할 경우 차선책으로 기시다 후미오를 지지할려고 했으며 실제로 지지한 듯 하다. 쉬운 말로 무조건 ''' [[고노 다로]]'''는 떨어져야 된다는 입장이다. 왜 그렇냐면 [[고노 다로]]를 지지하는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과 아베 전 총리는 정치적으로 앙숙이며 [[이시바 시게루]]도 아베 신조에 대해서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로부터 당 중역인 정조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2022년]] [[8월 10일]] 출범한 [[제2차 기시다 제1차 개조내각]]에서 내각부 경제안보담당상에 기용되면서 내각에 재입성했다. 그러나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추한 모습을 보였다.[[https://www3.nhk.or.jp/news/html/20220815/k10013771141000.html|#]] 9월 25일, 자민당 나라현 총지부연합회 회장에 취임했다.[[https://news.yahoo.co.jp/articles/c7730c073998e3a5ac81a904449351962902e83e|#]] 2023년 3월, 아베 내각에서 총무상을 지내던 2014~2015년의 방송 개입 의혹 문서가 공개되면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유신회와 손잡고 사임을 압박하고 있다. 당시 [[이소자키 요스케]] 총리 보좌관이 일본 민영방송인 TBS 프로그램인 '선데이 모닝'을 정권 비판적이라고 인식해 해석 변경을 주장했고, [[아베 신조]] 총리도 "현재 프로그램에는 이상한 것이 있어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발언하며 이에 동조한 내용이 문서에 기재돼 있다.[[https://www.yna.co.kr/view/AKR20230308058700073|#]] 총무성에서 야당인 입헌민주당 의원에 의해 공개된 문건이 내부 행정 문서가 맞다고 인정한 상황임에도 다카이치 본인은 의혹이 날조된 것이라며 잡아떼고 있다. 다만 기시다 총리도 “경위에 대해 총무성이 국민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며 다카이치를 감싸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사실 기시다 입장에서는 아베파의 후계자임을 강조하는 다카이치가 안그래도 눈에 가시였는데 야당의 손을 빌어 [[차도살인]]이 가능한 상황이 된 셈.[[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30308/118232907/1|#]] 논란이 커지자 [[3월 8일]]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 대정부질문에서 자신이 사건과 무관함을 주장하면서 책임을 이소자키 당시 보좌관에게 떠넘기려는 모습을 보였다.[[https://nordot.app/1006110763028905984|#]] 하지만 계속해 총무성과 다른 입장을 내면서 연일 궁지에 몰리고 있다. 덕분에 총무성이 인정한대로 문서가 사실이지만 [[날조]]된거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까지 하는 중이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나라현]]지사 선거 공천 과정에서 현직 지사와 큰 갈등을 빚어 나라현 지사 선거를 3파전(자민당 후보 2명 vs 유신회 후보 1명)으로 만들어 놨는데, 나라현지사 선거에서 자민당 분열로 만에 하나 유신회가 당선되는 일이 일어나면 방송개입 사건과 더불어서 다카이치한테 치명상이 될 전망이다. 특히 유신회 후보인 야마시타 마코토 후보가 당선되고, 다카이치의 측근인 히라키 쇼가 낙선할 경우 다카이치는 정치 생명에 큰 위기가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결국 4월 9일 [[제20회 통일지방선거]] 나라현지사선에서 유신회의 야마시타 마코토 후보가 44.4%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히라키 쇼 후보와 현임 나라현 지사인 [[아라이 쇼고]]는 각각 2위 (32.8%)와 3위 (16.2%)로 낙선했다. 다카이치 장관은 4월 11일 기자회견에서 나라현 선거 패배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히면서도, 히라키 쇼에 대해 지지를 하지 않은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이나 [[모리야마 히로시]] 선대위원장 등 당 지도부의 행동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https://www.nikkei.com/article/DGXZQOUA1121O0R10C23A4000000/|기사]] 이번 나라현지사 선거 자체가 다카이치와 모테기-모리야마의 당내 파벌 싸움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https://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12|'뒷배' 아베 잃은 강경보수 다카이치 사나에의 위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